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9주 반이라는 시간 동안 사랑을 나눈 내용의 영화이다. 여주와 남주는 첫 만남부터 강렬했다. 자석 같은 이끌림으로 둘은 순식간에 깊은 관계를 맺게 되지만 그 끝은 이별이었다. 이혼녀였던 여주는 남주의 특이한 성적 취향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믿음으로 그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하지만 점점 선을 넘는 그의 행동들에 그녀는 혼란을 느끼게 되고 얼마 안 가 자신이 성적으로 유린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그녀는 그와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게 된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 또한 그들의 이별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그에게 이별을 고하면서 그에게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장면. 그러한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9주 반, 석 달도 넘기지 못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그린 그들의 사랑은 다소 충격적이면서도 놀라웠다. 나에게는 아주 짧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아마 내가 9주 반이라는 시간으로 그들의 사랑을 그려내고자 한다면 반의 반도 못 그려낼 것 같았다. 그들의 사랑은 매우 빠르고도 벅찼다.
매력적인 남자, 종종 신비감을 주는 낯선 남자로부터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여자의 모습은 현실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소재인 것 같기도 하다. 성별을 불문하고 잘못된 만남으로 성숙하지 못한 관계를 시작하게 되면 영화 속 그들의 끝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현실감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공감할 수 있을 법한 내용 그리고 기시감을 지니게 해주는 내용인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내용보다 영화의 제목이 더 눈에 들어왔다. 9주 반, 누군가는 길게 느껴질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만남에 있어서는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혹여 누군가와 진지한 관계를 꿈꾸고 있다면 이 시간은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부족할 수도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적인 관계를 넘어 깊은 육체적 관계를 마주하게 되는 남녀 관계에 있어서 나인 하프 위크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부터 많은 사람이 남녀관계를 비롯해 여러 관계에 있어 인스턴트식 관계를 선호하고 있다. 어떤 사람과 오랜 관계를 맺으려 하기보다는 짧은 만남과 관계를 맺고자 한다. 오랜 관계로부터 오는 극심한 피로감과 부담감을 회피하고자 그들은 인스턴트식 관계를 잡았다. 이러한 관계는 관계로부터 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손쉽게 덜어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이익에 따라 관계를 취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유대를 주기보다 합리성을 추구하게 하며 인간을 도구나 수단으로 보게 만들기도 한다.
남녀관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관계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물론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이 이 경우에는 성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왜곡된 성 관념을 지니게 할 수도 있고 비정상적인 관계로부터 피폐해질 수도 있다. 이러한 황폐화는 한 인간의 몸과 마음을 타락시킬 수도 있다.
영화 속 여주인공이 그러한 위험의 문턱까지 갔었다. 가까스로 벗어나게 되지만 생각보다 여주인공처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위험의 문턱까지 갔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쾌락과 위험이 준 짜릿함을 맛보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극적인 세상에서 벗어나 잔잔하고도 지루할 수 있는 세상에 다시 발 들이는 것은 무수한 인내를 요구한다. 모진 참을성은 예상보다 견디기가 힘들다. 무엇보다 그러한 과정이 순탄하지가 않다. 강한 정신력을 지닌 것이 아닌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계를 맺거나 이러한 관계를 지속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관계의 시작은 관계의 끝만큼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함부로 연을 맺지 말라는 그들의 말처럼 누군가와 연을 맺는 것은 정말 신중해야 하는 것 같다.
자유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누군가가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그러한 구렁텅이에 빠질 리 없다는 보장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죽어서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 끝에서도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인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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