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
"모두가 희망을 안고 긴 잠에 빠지지만, 희망이 밝음과 곧장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희망은 어두운 곳에서 몸집을 불리고 불안과 공존해야만 존재가 가능하다."
"함부로 윽박지르지도 않는다. 화가 난다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는다. 자기주장을 펼치기 전에 먼저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해서는 안 될 일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이 단순하고 평범한 것들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엔 너무 많았다."
"돈이고 법이고 모조리 힘이 있는 자의 편에 서서 손을 들어준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자는 억울해도 당해야만 하는 게 법이고 진리였다. 이미 충분히 가진 것들을 더 갖기 위해 혹은 지키기 위해 이상한 방식으로 약자를 괴롭힌다."
"지구를 쫓아 바삐 갔던 사람들도 종국에는 다들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부지런히 걷는다. 인생은 지속된다. 변하는 건 없다. 지금의 삶에서 멀리멀리 도망가려 부지런히 걸어도 결국엔 제자리일 것이다. 둥그런 지구 위에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이다."
"관계가 편해진다는 건 본성을 드러내기 쉬운 관계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단 걸 가은은 알지 못했다."
"운이 좋으면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고. 지금과 완전히 다른 상황 속에서 살아갈 수도 있는 거라고. 헛된 희망이라도 좀 가지면서 살아보라고. 그래도 되는 거라고. 망해버린 인생에도 행복의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삶을 이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편안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끝을 빨리 당기기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제고 끝은 오니까요. 반드시 끝은 있으니까요. 이번 생이 망했는지 아닌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 같이 끝을 향해 꾸역꾸역 걸어가 봤으면 좋겠습니다."
감상
냉동인간을 소재로 한 SF소설이다. 읽으면서 등장인물이 많아 인물관계가 헷갈리기도 했다. 얽히고설킨 인물관계가 조금 헷갈렸다. 하지만 이 책에 관한 블로그 글들을 읽다가 인물관계도를 정리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을 참고하여 이 책을 읽어보면 될 것 같다. 아니면 노트에 인물관계를 직접 정리하면서 읽어보면 될 것 같다. 제목처럼 책의 내용은 조금 어둡다. 결말도 행복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어두웠다. 무엇보다 책 속 인물 중 '기한'은 읽으면서 욕 나올 정도로 핵폐기물 수준의 쓰레기였다.
동기인 '윤정'에게 예지몽을 빌미로 자자고 말하며 협박까지 한다. 그로 인해 윤정은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나게 되나 그곳에서 기한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된다. 결국 윤정은 아이를 낳게 되면서 인생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더불어 그가 50년간 냉동인간이었던 이유가 꿈속에서 봤던 여인인 '가은'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이는 가은을 무섭게 만들기도 했다. 그가 한 행적들을 일일이 다 적기 곤욕스러울 정도로 인간상이 괴이했다.
무엇보다 냉동인간 기술이 여러 질병에 따른 치료법으로 이용되기보다는 저마다 사적인 이유로 이용되었다. 과학기술이 돈만 있으면 어떤 이유든 간에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식들이 마주하게 될 자신의 늙음이 두려워서 냉동인간이 된 모습에 착잡함이 들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마지막 '규선'의 모습이 너무나 불쌍했다. 그의 인생이 너무나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기한은 희대의 쓰레기였다.
이 책의 소재였던 냉동 인간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만약 나에게도 냉동인간이 될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어떨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내게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는 불치병이 생기거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때 과연 냉동인간이 되려고 할지 생각해봐야 했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몹쓸 짓을 하여 그에 따른 죄를 피하고자 냉동인간이 되려고 할지 생각해봐야 했다.
하지만 모두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냉동인간이 썩 내키지 않았다. 아마 어떤 상황이든 자연의 이치에 맡길 것 같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 행동을 취하고자 하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죽음 앞에서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옆에 누가 없더라도, 고치지 못하는 병에 걸렸더라도 억지로 무언가를 하며 발악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저 현재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려고 할 것 같다.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냉동인간은 반감이 들기도 했었다.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50년 후, 100년 후 더 나아가 그 이후의 삶이 어떠한 모습일지 궁금하기는 하다. 그 속에서 그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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