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
"그 음악 사이로 늦은 오후를 오가던 소년소녀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 거리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실현하고 살아가는 지금일까? 향기로운 칵테일 한 잔에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을까? 아니면 하루의 피곤을 달래는 소주 한 잔으로 잠을 청하고 있을까?"
"'할 만한' 여건이 다 갖춰진 '나중' 같은 건 결코 도래하지 않는다. '언젠가'의 시제를 지키며 늘 미래로 밀려날 뿐이다. 정말로 '나중에, 언젠가'에 무엇을 할 의지가 있는 사람 같으면, 지금 당장에 틈틈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거. 순간의 성격이 변하지 않으면 이 인생의 방정식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그 시간의 미적을 사는 것."
"누구나가 어느 시절 이후로 자라지 않은 채 무의식으로 끌려 내려간 소년과 소녀를 간직하고 산다."
"악셀의 가속으로 만큼 불어오던 바람, 오토바이가 멈추면 이내 사라져 갈 아주 잠깐의 바람. 돌아보면 꿈결 같았던 청춘의 사랑은 갈망의 연료를 다 태울 정도까지만이었다. 그러나 또한 서로에게 가능하지 않았던 '영원'이란 말은 너무 쉽게 내뱉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들. 누구나 영화와 소설 같은 사랑과 삶을 꿈꾼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영화와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사랑하지도 살아가지도 못한다. 우리의 이 감동 없는 현실은 그런 단순한 이유에서가 아닐까?"
"그 시절의 그 사람을 기억한다기보단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싶어서···. 멈춰진 어느 시간 속에 두고 온 첫사랑 곁에는, 아직도 설레는 마음으로 사랑과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아직은 순수한 열정으로 들끓던 시절의 내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상기하기 위한 좌표로서 혹은 증인으로서 그 사랑을 붙박아 둔 것인지 모른다. 그 과거가 실제의 나에 대한 기억이든, 한껏 미화된 나에 관한 기억이든,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기억 자체로 지금을 위로하기 위한···."
"그렇듯 무엇을 좋아한다는 건, 약간의 광기도 섞인 증상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증상도 그렇잖아. 미칠 듯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이미 약간은 미쳐 있는 거야. 그러나 또한 미쳐야 미친다고 했던가. 미치지 않고서는 그렇게 하지 못할 일들."
"이상이란 그 이상의 속성이 지켜지는 동안에나 이상일 수 있는 법, 내가 투영한 환상 밖으로 내쳐진 현실은 때론 잔인하도록 허망하다. 여기를 보려고 먼 길을 달려왔단 말인가. 때문에 그 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파리 신드롬 같은 것. 소중히 간직해 왔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순간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되레 내게서 가능한 최고의 문체로 써내리고 싶은, 바람과 구름과 비, 그리고 사람과 사랑."
감상
읽으면서 여운이 많이 남았던 책이다. 인상 깊었던 구절도 무척이나 많았다. 옛 생각이 날 때, 옛 추억에 잠길 때 이 책과 함께하면 더 극대화될 것 같았다. 너무 여운이 많이 남아서 책을 다 읽고 난 후 영화를 한 편 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책 제목은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패러디한 것이라고 한다.
영화의 내용처럼 이 책 역시 지나간 시절을 다루고 있다. 당시에 만끽했던 미술과 음악 그리고 문학, 인상 깊었던 여행지, 추억의 공간 등을 언급하면서 지나온 시간에 대해 느껴야 했던, 느끼고 있는 점들을 얘기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모든 글이 여운이 많이 남았다. 새삼 나의 과거를 돌아보며 지나온 나의 시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시절, 글자를 보기만 해도 여운이 참 많이 남는 것 같다. 듣기만 해도 울컥해지는 것 같다. 그저 시절이라는 글자가, 이 단어가 잠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 같다. 이 나이에 시절을 언급하는 것이 웃기지만 그래도 지나온 시간과 추억이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종종 그 속에서 지나쳐야 했던, 지나와야 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옛 공간에 가보고 싶을 때가 있다. 아련해진 추억을 선명히 붙잡고 싶어질 때가 있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 걸까? 왜 이리도 큰 영향을 주고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남기는 것일까?'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하는 여러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나의 그 시절, 야속하지만 종종 그 시절의 내가 무척 그립다. 정말 그들이 그립다. 어느 때에는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수 있는 최고의 행동은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거로 생각한다. 나 또한 집중되지 않을 때나 여유 시간이 있을 때 과거 회상을 참 많이 하는 것 같다. 떠올리기만 해도 잘했다 싶은 선택과 행동도 있지만, 무척 후회되는 선택과 행동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러한 마음이 순식간에 침범해 버리면 우울감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겨우 그곳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시는 과거 회상 따윈 하지 말자며 다짐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앞으로도 종종 지난 시절을 돌아볼 것 같다. 그 시절을 되감아 잠시 음미할 것 같다. 멈춰서 옛 추억을 만끽하고자 할 것 같다. 그 시절을 돌아본다는 것은 심적으로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하게 하지만 삶에 있어서 매우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낭만을 주기 때문이다. 눈으로 마주하게 되는 실체물이 하나도 없을지라도 낭만을 준다는 사실 그 자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어준다고 본다.
잠시 지난 시절을 되감아 보면 당시에 봐야 했던 영화나 만화, 음악과 추억의 장소가 많이 떠오른다. 사라진 추억의 장소는 아직도 흔적의 잔상을 남게 한다. 영화나 음악은 다행히 사라지지 않았고 만화 역시 그러했다. 옛 생각이 떠오르면 다시 보고 들으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느껴야 했던 감정들은 들지 않았다. 풋풋했던 감정, 마냥 새로웠던 감정은 들지 않았다. 기억이 제 나이를 찾아가듯 감정도 성숙해져 버렸다. 하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아쉬움이 남는 것은 바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그 시절의 사람들, 우정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겠다. 당시에 여러 감정을 내게 알려준 그 사람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쉽다.
몇 달 전 거리 곳곳이 벚꽃으로 가득했다. 봄 향기로 가득 메운 거리를 거닐자 커플이 참 많이 보였다. 옛날에는 홀로인 내 신세가 처량해 보여서 그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부러움에 배 아파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젊은 커플, 연인들의 애정 행각이 마냥 예뻐 보였다. 그들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생김새나 차림새를 불문하고 그냥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애정이 어린 그 표정들이 참 예뻤다.
그들을 멀찍이서 바라보다 문득 옛 얼굴들이 생각나기도 했었다. 그간 지나온 사람들, 내 마음속에 고이 모셔두어야 했던 소중한 나의 사람들. 그들이 새삼 떠올랐다. 그리고 잘 지내고 있는지, 잘살고 있는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미련한 마음에 SNS를 뒤적거려 보려다 말았다. 그냥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을 뿐, 더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 시절 마주했던 사람들, 나아가 나라는 사람을 좋아해 준 사람들, 그리고 내가 무척 사랑했던, 마음속 깊이 좋아했던 그 사람, 정말 고마웠고 감사했고 반가웠다. 잘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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