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어느새 대학교 2학년이 된 와타야 이즈미는 절친이었던 히노의 연인이자 짝사랑의 상대였던 가미야 도루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도루를 그리워하며 아직도 그의 존재를 잊지 못하는 자기 모습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와타야는 한 학년 아래의 같은 과 후배인 나루세에게 고백받게 된다. 자신을 너무 좋아하는 듯한 나루세의 모습에 연애를 시작하게 되지만 조건부 연애를 하게 된다. 조건은 히노와 도루가 했었던 바로 그 조건. 와타야는 그들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듯,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듯 그 조건에 따라 연애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못 가 헤어지게 된다. 나루세에게서 자꾸만 도루가 보였던 와타야는 그만하자고 말하게 된다. 와타야를 향한 마음을 접을 수 없었던 나루세는 그녀의 사정을 우연히 접하게 되고 가미야 도루라는 사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밀어내는 이유를 알게 된다.
이를 알고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며 그녀를 포기하지 않으려 하게 된다. 결국 나루세는 노력 끝에 와타야와 제대로 사귀게 된다. 와타야 역시 나루세와 사귀기까지 도루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고 무언가를 깨우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게 된다. 가미야 도루의 얘기를 자신의 언어로 쓰게 된다. 결국 히노는 히노만의 방식으로, 와타야는 와타야만의 방식으로 가미야 도루를 그리워하며 사랑하게 된다. 그와의 추억을 간직하게 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
"여기에 있는 것은 0이 아니라 성장하지 못한 1이라고 느꼈다. 0은 무슨 수를 곱해도 1이 되지 않는다. 0과 1 사이에는 무한과도 닮은 거리가 놓여 있다. 단순히 지나가는 사람이나 배경의 일부로서 0으로 끝나고 마는 경우도 많다."
"인생에서는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간단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있는 것은 질량을 수반해 어쩔 수 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진리를 부정하면 여러 가지로 문제가 생긴다."
"시간은 사람을 애매하게 만든다. 잊지 않겠다고 맹세한 일도, 시간과 함께 옅어져 간다. 반대로 잊을 수 없다고 느꼈던 아픔이나 슬픔을 시간이 옅게 만들기도 한다."
"잊고 싶어 했던 일. 잊지 않아도 된다고 눈물 흘렸던 일. 그런 일들을 모두 감싸 안고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갔다. 모든 것을 과거로 남겨두고. 아무도 시간을 멈추지 못하고 망각에 저항할 수도 없다."
"사람의 목숨은 허무한 것일지도 모른다. 켜지면 반드시 꺼지는 불이며, 그러한 운명에서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은 따뜻한 것을 남긴다."
감상, 스포주의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의 다음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인공이 '와타야 이즈미'였다. 히노의 절친이었던 와타야의 시각에서 펼쳐진 내용이었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를 읽으면서 와타야의 마음을 어느 정도 눈치챘었지만, 생각보다 깊었던 와타야의 사랑에 마음이 저절로 아팠다. 남몰래 간직해야 했던 와타야의 사랑은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짝사랑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기억장애가 있었던 히노에 비해 와타야는 도루의 죽음까지 이르는 모든 과정을 기억해야 했다. 그리고 도루의 죽음 이후 그의 유언에 따라 히노가 간직한 그와의 추억을 없애야 했다. 그러한 모습까지도 와타야는 기억해야만 했다. 때문에 그녀는 그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도루에 관한 모든 것을 마주하며 자신의 마음속에 남겨두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와타야도 히노 못지않게 몹시 아팠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도루를 잊지 못하는 와타야의 모습을 보고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저절로 들어야 했다.
하지만 와타야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아픔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기억장애를 낫게 된 히노도, 도루를 향한 마음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게 된 와타야도. 모두 도루를 간직한 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사랑의 아픔에 대해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가미야 도루를 향한 히노와 와타야처럼 누군가를 가슴 아프도록 그리워해 본 적은 없다.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어쩌면 시간이 다 해결해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제 그만 아파하라며 그들을 잊게 해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픔의 상처가, 그리움의 흔적이, 시간의 물결에 따라 흘러가 버린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다 해결해 준 것 같다. 질질 끌어야 했던 상대를 향한 마음도 시간이 다 해결해 준 것 같다. 허무할 정도로 고요히 흘러간 시간이 아픔을 낫게 해 주었다.
이별 후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하소연하듯 자신의 아픔을 토로하면 다들 조언을 해주기 바쁘다. 그들의 조언을 멀찍이서 들어보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거라고. 힘내라고."
우습게도 정말 그랬다. 당시에는 그러한 말들이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당사자가 아니니까 저렇게 쉽게 말하는 거라며 애꿎은 원망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들의 말들이, 그러한 말들이 얼마나 적절한 말인지를. 얼마나 좋은 위로인지를.
가미야 도루를 향한 히노와 와타야 또한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를 잊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를 완전히 잊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예전만큼 선명해지지는 못할 것이다. 옛날만큼 그의 얼굴이 뚜렷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아픔을 낫게 하는 약도 선물해 주지만, 망각도 선물해 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 깊은 곳에 추억을 남겨둔다고 한들, 시간이 그러한 모습을 잊게 만든다. 점차 흐리게 만든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인간인 이상 우리는 그러한 과정을 피할 수가 없다. 잊혀가는 과거의 시간과 얼굴을 붙잡을 수가 없다. 그러니 힘들어도 삶을 살아가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면 무뎌질 때쯤, 마음속 굳은살이 생길 때쯤 제대로 된 시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삶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김혜남 (0) | 2024.07.31 |
---|---|
누구에게도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 - 지민석 (0) | 2024.07.31 |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 이치조 미사키 (0) | 2024.07.14 |
불편한 편의점2 - 김호연 (0) | 2024.07.14 |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0) | 2024.07.14 |
저주토끼 - 정보라 (0) | 2024.07.11 |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 무라세 다케시 (0) | 2024.07.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