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
"선숙은 이제 아들을 닦달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고시 같은 걸 보라고도 안 한다. 결혼하라는 말도 안 하기로 했다. 아들 세대 앞에 놓인 세상 형편이 자신이 젊을 때의 기준과 다르다는 걸, 아들의 설명을 듣고 인정한 뒤에 일어난 변화였다. 자신과 분리되려는 아들의 모습을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서로의 차이를 알게 되었고, 거리를 지키게 되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홀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자신 같은 사람에게 서울은 늘 자격을 묻는 듯했다. 네가 천만 명이 사는 세계적인 도시에서 살 능력이 있어? 무리하지 말고 고향에서 적당히 살지 그래? 서울은 아무나 와서 사는 그런 곳이 아니야, 라고 비웃는 듯했다. 불빛으로 가득한 대도시는 화려함 그 자체였지만, 소진은 그 빛의 장벽의 그림자 아래 웅크리고 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배워야 했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재료는 말이었어. 점장님의 두서없이 늘어놓은 이야기는 잔소리 같지만 사실은 배려라네. 자네의 수다 역시 나쁜 의도가 아니란 걸 알고 있고. 나는 그렇게 할 말재주도 심성도 부족했던 것이고."
"이곳에서 나는 숨이 좀 트였고, 지친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고, 묵은 생각을 꺼내 햇살에 말릴 수 있었다. 스스로를 옥죄는 문제들을 외면하기보다 공존하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전원주택에 끊이지 않는 벌레들을 모조리 살충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으로서 살며 얻어가는 불편하고 곤란한 일들을 받아 안고 사는 법을 체득해 갔다. 평안. 평안은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바라볼 수 있어 가능했다. 늘 잘해왔다 여기기 위해 덮어둔 것을 돌아보았고, 부족한 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애썼다."
"매일 방 한쪽을 꽉 채운 세계지도를 아끼는 그림처럼 감상했다. 지도에조차 뿌옇게 깔린 것만 같은 바이러스가 사라지는 날 나는 아시아의 골목과 숲을, 유럽의 정원과 건물 사이를 걸을 것이다. 세계를 돌며 많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것이다. 기억이 사라지는 마지막까지 떠올릴 추억들을 머리와 마음 가득히 채울 것이다."
"좋은 관계는 절로 맺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살피고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감상, 스포주의
『불편한 편의점』 두 번째 이야기이다. 독고가 떠난 후 1년 6개월이 지난 이야기이다. 소설 속에 그려진 환경이 코로나19 감염병으로 고생했던 우리의 현실을 담고 있어 현실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읽으면서 가상의 인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전작보다 더 좋았다. 그리고 더 감동적이었다.
노숙자 '독고'가 자기 삶을 되찾고 나간 청파동 ALWAYS편의점은 1년 6개월이 지난 후 새로운 야간 알바를 들이게 된다. 그는 '홍금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황근배'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두꺼운 이력서를 건네고 우여곡절 끝에 편의점에서 일하게 된다. 편의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에게 위로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그의 모습은 독고를 연상케 한다.
한편, 취준생 소진은 고향인 목포에서 벗어나 서울로 상경해 취업 준비를 하게 된다. 연이은 고배에 결국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시작하게 된다. 힘든 상황 속에서 홍금보에게 위로받게 되고 브랜드 홍보 전문 회사에 제대로 취업하게 된다.
최사장은 소고기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이다. 코로나로 인해 힘든 상황을 겪고 있었고 아들과 부인과의 마찰이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홍금보의 조언에 따라 아내와 아들의 말을 듣게 되고 식당을 재정비하여 새롭게 운영하게 된다.
홍금보라고 불리는 황근배는 대학에 합격하면서 독립하게 된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우연히 들어가게 된 연극반에서 배우라는 꿈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엄마가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엄마는 몸이 무척 아픈 상태였다. 제대로 된 역할로 연극을 보여준 지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같이 일했던 박대표가 교통사고로 죽게 되어 극단이 해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너지려 할 때쯤 엄마의 남자친구가 전한 엄마의 유언에 따라 정신 차리게 된다.
아들인 민식을 피해 양산 이모네로 가서 1년 넘게 생활한 염영숙 여사는 어느 날 전화를 받게 된다. 바로 아들 전화. 홍금보를 통해 정신을 차리게 된 민식은 편의점을 제대로 운영하고자 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돌아오라고 말하게 된다. 결국 딸과 아들에게 재산을 나눠주고 재산을 정리한 염영숙 여사는 치매 걸리기 전에 세계 여행을 다니고자 한다. 오랫동안 꿈꾸던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한다.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며 건강한 삶을 살고자 하게 된다.
야간알바를 그만둔 홍금보가 다시 편의점에 찾아오게 된다. 그가 편의점에 오면서 뜻밖의 사실을 전하게 된다. 그가 연극하게 되는 인물은 독고, 과거 이 편의점에서 일했던 독고. 그를 연기하기로 했으며 그 작품을 쓴 사람은 정인경. 그녀가 독고를 주인공으로 쓴 희곡을 연극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는 자신이 연기할 독고의 삶에 흥미를 느껴 이 편의점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의 초대에 염영숙 여사는 연극을 관람하게 되고 거기에서 독고를 만나게 된다. 그와 감동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소름이 돋기도 했다. 비현실적인 인물이 한 명도 없었고 비현실적인 삶의 이야기도 없었다. 어쩌면 삶은 예측할 수 없기에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한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의 얘기가, 그들의 삶이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 얘기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마치 누군가의 삶을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바로 "비교는 암, 걱정은 독."
감동을 자아내는 소설은 곧 여운 남는 글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염영숙 여사와 독고와의 만남에서는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다. 정말 여운이 많이 남았다. 소설 속 배경 역시 감염병을 언급하고 있어서 더욱 현실감이 느껴졌다. 단순하고도 가벼운 느낌만 드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실제로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누군가는 독고가, 누군가는 황근배가. 우리가 사는 사회 곳곳에 염영숙 여사를 비롯한 여러 인물이 실제로 존재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존재할 것으로 생각한다. 강하게 드는 현실감은 무언가의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해피엔딩을 맞이한 그들처럼 모두 해피엔딩을 맞이할 것으로 생각한다.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듯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해피엔딩 같은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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