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제목에 이끌려 읽어봤다. 찾아보니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도 있었다. 혼자 점심 먹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글들이 참 많았다. 음식 얘기를 많이 할 줄 알았지만, 삶의 얘기를 하고 있어 위로받기도 했었다. 이 책을 쓴 작가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책에서는 많은 작가분이 점심에 관한 여러 얘기를 해주시고 계셨다.
요즘 식당에 가보면 옛날과는 다르게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게 된다. 나 역시도 혼자 밥 먹기를 20살 때부터 했었다. 처음부터 혼자 밥 먹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다. 내 경우에는 그냥 배가 너무 고파서 밥을 먹다 보니 어느새 혼자 밥 먹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혼자 밥 먹는 것에 크게 부담감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나중에는 혼자 점심을 먹고 밥을 먹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했었다. 이렇게 쉬운 걸 교복 입던 시절에는 왜 그리 두려워하고 걱정했는지 모르겠다. 혼자 점심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모두에게 점심이 편안하고 당연한 권리가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점심을 거르게 되고 어쩌다 아프더라도 괜찮다고, 조금 느리거나 완벽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서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
눈치를 살피느라 많은 비정규직이 점심을 거르고 일하며 불규칙한 생활을 한다는 것을 언급하며 위의 말을 한 것이 정말 인상 깊었다. 먹고살자고 하는 행동들이 오히려 제대로 된 식사, 제대로 된 점심도 먹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노동자가, 많은 사람이 제대로 된 식사, 맛있는 점심을 먹는 것이 당연한 권리가 되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특히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할지 목적지를 상실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는, 그냥 잠시 이대로 버텨보는 것도 방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완전히 쓰러지느니 간당간당하게라도 버티다 보면 가야 할 곳이 보이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나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존버가 답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버티는 것은 뜻밖의 행운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돈이든, 사람이든, 일이든 끝까지 버티다 보면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오는 것 같다.
"높은 교육 수준에 비해 사회문화적으로 결혼에 대한 담론은 제자리걸음이거나 그보다 조금 나아간 수준이고 '결혼 안 한 여자'에 대한 편견 역시 뿌리 깊다. 이런 토양에서는 결국 결혼 자체에 대한 깊은 숙고를 건너뛰고 곧장 결혼으로 나아가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너무 공감되었다. 높은 교육 수준에 비해 사회적 의식은 변화가 없다는 것이 무척 공감되었다. 특히 결혼 안 한 사람, 더 나아가 결혼 안 한 여자에 대한 편견이나 시선은 옛날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이 마흔이면 당연히 결혼했을 거로 생각하는 의식, 더 나아가 이미 아이 엄마라고 생각하는 편견. 정말 세월이 흘러도 이러한 편견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훗날 나 역시도 이러한 편견과 관념에 휩쓸려 내 인생을 잃게 될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러한 편견에 맞서 싸우는 것이 버거워 휩쓸리듯 결혼하게 될까 봐 걱정된다. 그들의 시선에 혹해 급하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려 할까 봐 걱정된다.
"무엇을 '남기고 가겠다'는 대단한 포부 같은 건 가져본 적 없지만, 하늘을 보며 내가 '돌아가 안길 곳'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나이가 되면, 나는 다만 긍정하고 싶다.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많은 일에 대해, 신의 존재를 회의하게 만들었던 고통에 대해, 내게는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던 삶 그 자체에 대해, 더없이 다정하고 명랑한 얼굴로 지금 이 시간을 돌아보고 싶을 뿐이다."
죽음을 앞둔 나이가 되었을 때 지나온 모든 삶을 긍정하고 싶다는 작가의 생각에 잠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엇나가지 않고 올바르게 삶을 살아왔어도 삶은 후회하기 마련이고 미련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후회와 미련은 삶의 일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긍정하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이 무척이나 넓게 느껴졌다. 과연 나는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지나온 나의 삶을 긍정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당신의 점심은 괜찮은지.
삶이 당신을 지나는, 아니 당신이 삶에 들어서는 속도는 수월한지."
혼자 점심을 먹게 될 앞으로의 나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위로가 될 말인 것 같다.
부록에 '혼자 점심 먹고 나서 그냥 하는 질문'이라는 명목으로 책을 쓴 작가분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 덕분에 작가분들의 대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의 대답을 읽다 보니 문득 나도 대답하고 싶어서 적어본다. (참고로 질문의 어투나 문구는 약간의 수정을 했다.)
Q1. 오늘 점심엔 뭘 드셨나요?
A1. 비빔면을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Q2. 당신에게 점심은 어떤 의미인가요?
A2. 꼬르륵 소리가 안 나게 하려고 어거지로(?) 먹는 식사인 것 같습니다.
Q3. 오늘 저녁에 세상이 망한다면 점심에 뭘 하고 싶으신가요?
A3. 일단 그동안 고마웠거나 무척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메시지를 보낼 것 같습니다. 그동안 고마웠고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난 후 가족과 함께 맛있는 점심을 먹을 것 같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그동안 써왔던 글들, 남겨왔던 기록물들을 찬찬히 읽어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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