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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by 굿조은 2024.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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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편의점-김호연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

 

"그녀는 그동안 봉인됐던 필력이 풀린 듯 쉼 없이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저녁에 시작된 작업은 어느덧 자정을 넘겼고, 겨울 밤하늘의 어둠이 짙어질수록 그녀의 글도 밀도를 더해갔다. 그 새벽, 동네에 유일하게 불이 켜진 곳은 독고 씨의 편의점과 그녀의 작업실뿐이었다."

"텅. 무언가가 민식의 몸속 어딘가에 낙하했다. 고통의 추가 내장을 관통해 바닥으로서까지 그의 몸을 끌고 가는 게 느껴졌다. 민식은 엄마가 아픈 것도, 엄마가 자신에 대해 그런 식으로 남에게 말한다는 것도 몰랐다. 사내가 판결문 읽듯이 숨을 골라가며 진술한 말들이 무거운 추가되어 민식을 심해의 어두운 곳으로 끌고 들어가는 듯했다."

"뇌는 커다란 추가되어 거대한 심연 속으로 당신을 끌고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당신은 다른 방식으로 숨 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야 만다. 코도 입도 아가미도 아닌 것으로 숨을 쉬며 사람이라고 우기지만 사람 아닌 존재로 살 뿐이다. 고통의 기억을 잊으려 허기조차 잊고 술로 뇌를 씻어보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기억을 휘발시켜 버리고 이제 내가 누구라고조차 말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다."

"기억과 현실 사이에 놓인 빙벽이 녹아내리고 있었고, 서서히 빙하 속 매머드 같은 덩어리들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내 기억의 시체들, 그것들이 좀비처럼 일어나 나를 덮치고 있었다. 나는 좀비들에게 뜯기면서도 그들의 얼굴을 알아보려 애썼고, 그건 그것대로 견딜 만한 일이었다."

"이 나라에선 사람을 죽이거나 성범죄를 저질러도 의사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다. '불사조 면허'라고 한다. 왜 그러냐고? 의료 기술자들이 법 기술자들과 친하기 때문이다. 그걸 믿고 우리는 그런 짓들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 그런 끔찍한 특권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살리다 보니 스스로를 전지전능한 신으로 착각한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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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정말 너무 재밌게 읽은 책이다. 지루할 틈 없이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어느새 한 권을 다 읽어야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한 책이었다. 베스트셀러라 쉽게 접하게 된 것도 있지만 제목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편의점이 불편하다는 것인지, 사람이 불편하다는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역사 교사로서 오랜 시간 교직 생활을 하다가 퇴직한 염영숙 여사는 뜻하지 않게 노숙자로부터 도움을 받게 된다.

 그의 이름은 "독고" 그는 염영숙 여사가 운영하고 있던 편의점에 야간 알바로 일하게 된다. 그가 일하기 시작하자 편의점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인 시현과 오선숙 또한 그의 영향을 받고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이 편의점에 들르는 손님 모두가 노숙자인 독고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기억을 잃은 채 노숙자 생활을 해야 했던 독고는 편의점에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기억을 되찾게 된다. 마침내 자신의 과거를 제대로 마주하게 된다.

 멀쩡해 보이는 책 속 인물들이 저마다 사연이 있다는 것에서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염영숙 여사에게도 골치가 아픈 아들이 존재했고 마냥 밝아 보였던 오 여사에게도 자식과의 마찰이 있었다. 비록 소통의 마찰이었지만 그러한 모습들이 너무 공감되었다.

 아르바이트생이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시현 역시 공감되는 인물이었다. 더불어 쌍둥이 딸을 둔 경만의 모습 역시 너무 공감되었다. 무거운 가장의 무게가 절실히 느껴지는 인물이기도 했다. 경만의 모습은 마주하면 할수록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써야 했던 인경의 모습 또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무언가를 동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저절로 공감되는 그들은 모두 우리처럼 저마다 사연이 있었고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 존재했다

 그러한 인물들이 모두 노숙자인 독고로부터 위로받게 된다는 것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예상치 못한 인연이 깊은 의미를 전해주는 것이 우리네 인생과도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도 예상치 못한 만남과 그러한 인연의 연속이다. 그러한 만남 속에서 우리는 뜻하지 않게 위로받고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상처 또한 치유할 수 있게 된다. 남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위로와 조언을 건넨 독고가 결국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게 되고 상처를 치료하게 된 것처럼.

 독고 역시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어두웠던 삶에 빛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포기하려 했던 삶을 다시 붙잡고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생은 일방적인 도움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게 되면 또 다른 누군가가 도움을 받게 되거나 혹은 자신이 그 도움을 받게 된다. 결국 돌고 도는 것 같다. 마치 수레바퀴처럼 인생은 의연히 흘러가는 것 같다. 

 의료사고를 낸 의사였던 독고가 자신의 죄를 안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의지를 다졌듯이 삶은 자신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따라 달린 것 같다. 힘든 일이 있어도, 괴로운 일이 있어도, 빛이 보이지 않아도 자신이 어떠한 생각과 마음을 가졌는지에 따라 삶은 움직이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생기고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잘 이겨내줬으면 한다.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 인생은 돌고 도는 거니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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